'시' 카테고리의 글 목록
본문 바로가기

19

오르막/크리스티나 로세티 오르막 크리스티나 로세티 길이 언덕 위로 내내 구불구불한가요? 그래요. 끝까지 그래요. 오늘 여정은 하루 종일 걸릴까요? 아침에 떠나 밤까지 가야 합니다, 내 친구여. 밤에 쉴 곳이 있을까요? 서서히 저물녘이 되면 집 한 채가 있어요. 어두워지면 혹시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까요? 그 여인숙은 분명 찾을 수 있습니다. 밤에 다른 길손을 만나게 될까요? 먼저 간 사람들을 만나겠지요. 문을 두드려야 하나요? 보이면 불러야 하나요? 당신을 문간에 세워 두지는 않을 겁니다. 여행에 고달프고 허약해진 몸, 평안을 얻게 될까요? 고생한 대가를 얻을거에요. 나와 찾아온 모든 이들에게 돌아갈 잠자리가 있을까요? 그럼요, 누가 찾아오든 잠자리는 있답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1830.12.05~1894.12.29 영국의 .. 2024. 2. 15.
윤동주_쉽게 씌어진 시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 (六疊房 ) 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 天命 )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 詩 )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 沈澱 )하는 것일까? 인생 ( 人生 )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 六疊房 )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 6월 3일 시의 갈래- 자유시 ,.. 2024. 1. 5.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설명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1903~1960) 김영랑 시인은 전라남도 강진군 출생으로 순수 서정의 대표시인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1930년대 정지용, 박용철과 함께 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03년 1월 전라남도 강진군 남성리에서 유복한 가정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 2023. 12. 31.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의침묵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 盟誓 )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 (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 指針 )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 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슬데없는 눈물의 원천( 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 2023.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