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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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한용운

by mkg01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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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 盟誓 )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 (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 指針 )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 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슬데없는 눈물의 원천( 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1879~1944)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인이자 승려 (민족대표 33인 불교계 대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아버지( 한응준)는 부농이였으며, 한용운은 두 아들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한학을 배우고 18세 때에는 고향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수년동안 불교 서적을 읽었다고 전해집니다.
부친은 일직이 종 5품의 도사를 지냈지만, 1894 12월 5일 참모관으로 동학농민운동진압에 참여하다 도중 전사하게 됩니다.
1905년 영제스님에 의해 수계를 하고 법명 용운을 얻게 됩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으로 가서 독립군 군관 학교로 운영중이던 신흥무관학교를 방문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만주와 시베리아 등을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하여 불교 학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3.1 운동때(1919년)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를 선언하였으며 자진 체포되었습니다.
3년을 복역하고 출소하여 민족 의식 계몽에 대한 준비를 하며 1926년  <님의 침묵>을 출판하며 저항 문학에 앞장을 섭니다.
1944년 광복을 1년 남기고 65세에 뇌졸증으로 입적하게 됩니다. 숨진 뒤에도 체온이 내려가지 않았으며 혈색도 양호하여 사람들은 한용운이 다시 눈을 뜨지 않을까하여 사흘을 기다렸다가 화장하였다고 합니다.
 
 
 
<님의침묵>은 은유법, 역설, 부정적 표현등을 사용하였으며 시상적 깊이를 예술적 표현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님의 침묵>은 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주제로 
점층법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역설법(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등을 사용하였습니다.
'님'은 절대자, 조국, 부처 민족,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며  님을 떠나보내어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돌아올거라는 믿음(재회에 대한 믿음)의 희망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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